정체성 단계에 상처받은 커플의 특징


이번 오리지널에서는 정체성의 시기에 상처와 결핍을 경험한 사람들이 성인이 되어 어떤 부부 갈등 패턴을 보이는지 살펴보았다.

 정체성 시기의 상처를 가진 동민 씨와 지영 씨. 동민 씨는 너무 경직되어 지영 씨의 의견을 조금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반면, 지영 씨는 너무 흐릿해 동민 씨 앞에서 자기 의견을 조금도 제대로 펼치지 못한다.

이 두 사람은 왜 관계 속에서 이런 모습을 보이는 걸까. 어린 시절 어떤 상처와 결핍이 있어 경직되고 흐릿한 사람이 되었는지 지금부터 한번 알아보도록 하자.


정체성의 시기

적절한 반영과 격려가 필요한 때

아이가 대략 3세 경에 접어들면 이제는 부모가 하는 언어적인 표현에 대한 수용력이 커지게 된다.  그 전까지는 부모와의 신체적 접촉이나 표정, 목소리 톤과 같은 비언어적 요소들에 의해 영향을 받았다면 이 시기부터는 부모의 언어적 메시지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기 시작하는 것이다. 

아이는 여전히 외부의 반응, 특히 주 양육자인 부모의 반응에 매우 의존적이기 때문에 부모의 긍정적인 반영과 격려는 정체성을 형성하고 자기감을 발달시키는 데 매우 중요하다.

바깥 세상에 호기심을 갖고 탐험하던 아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자기의 내면세계에 호기심을 갖기 시작한다. 부엌 용품 자체를 갖고 놀던 아이가 이제는 부엌 용품을 갖고 요리를 하는 요리사가 되어 논다. 슈퍼맨이 되어 악당을 물리치기도 하고 가족들 앞에서 가수가 되어 무대를 펼치기도 한다. 

이때 부모가 "와, 용감한 슈퍼맨이네!" "정말 멋진 가수구나!" 등 적절한 반영과 격려를 충분히 해주면 아이는 부모의 반영을 통해 자기 정체성의 모든 면을 탐험하고 통합하여 건강한 자기감을 발달시킬 수 있다.

 

선택적 반영은

경직된 자기를 만든다

안타깝게도 많은 부모가 아이의 모든 놀이에 긍정적으로 반영해 주지는 못한다. 거친 놀이를 싫어하는 부모는 아이가 군인놀이를 하며 총 쏘는 군인 흉내를 낼 때 "난폭한 건 좋지 않아. 엄마는 총 쏘는 거 싫어해"와 같은 반응을 자연스레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반응을 들은 아이는 더 이상 그 놀이를 주저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무용수 흉내를 내는 남자아이나 레슬링 선수 흉내를 내는 여자아이에게 어떤 부모들은 이를 인정해 주지 않고 오히려 혼을 냄으로써 아이에게 수치심을 심어줄 수도 있다. 이처럼 아이의 놀이활동에 대한 부모의 선택적 반영은 아이로 하여금 부모로부터 허용된 부분만을 인정하고 그렇지 못한 부분은 거부하면서 제한적이고 경직된 자기를 발달시키게 만든다.

그리고 이들은 성인이 되면 대개 경직된 견해를 고수하며 과거에 당했던 수치를 당하지 않기 위해 어떠한 흠이나 약점도 드러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이들은 감정을 억제하곤 하는데, 그 이유는 감정을 가지고 있으면 수치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겉으로는 매우 통제적인 사람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 이면에는 수치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크게 자리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럼 이제 경직된 자기를 발달시킨 동민 씨의 어린 시절은 어떠했는지 살펴보자.

 

동민의 어린 시절,

동민 씨는 매우 엄격한 부모님 밑에서 자랐다. 그의 아버지는 평생을 직업 군인으로 사셨는데 동민 씨는 그런 아버지가 늘 어려웠다. 그의 가정은 마치 육군사관학교와 같아서 지켜야 하는 규칙들이 굉장히 많았다. 방은 항상 정리정돈이 되어 있어야 했고 방에서조차 편하게 널부러져 있는 것은 용납되지 않았다. 

어린 동민은 실수를 하거나 부모님의 기준에 옳지 않은 일을 하면 그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벌을 받았다. 특히 그의 아버지는 벌과 함께 그를 깎아내리는 말을 자주 하셨는데 그럴 때마다 어린 동민은 수치심을 느꼈고 더 이상 그 행동을 하지 않았다. 그는 그렇게 부모님의 자랑스러운 아들로 성장해 사회적으로도 인정받는 사람이 되었다.

동민 씨는 부모님이 어린 시절 자신을 매우 혹독하게 대했다고 생각하면서도 오히려 강철이 불에 의해 단련되듯 그 양육 덕분에 지금의 자기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에게 있어 상대방의 행동에 대한 비난은 상대방을 위한 것이었다. 그가 지영 씨에게 하는 비판이나 비난 또한 그녀를 위한 것이다.

그러나 지영 씨가 자기가 하는 결정이나 행동에 대해 불평을 할 때면 아버지로부터 느꼈던 수치심을 동일하게 느꼈다. 마치 자기가 옳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들렸고 자기를 하찮은 존재로 여기는 것 같아 오히려 그녀에게 분노와 비난의 화살을 돌리게 됐다. 동민 씨에게 그녀의 불평은 마치 자기가 그토록 듣고 싶지 않았던 "너는 보잘 것 없는 인간이야"라는 메시지로 들렸다.


반영의 부재는

흐릿한 자기를 만든다

아이는 자기의 내면세계를 탐색하며 놀 때 그것에 대한 부모의 반영을 토대로 자기 정체성을 확립해 나간다. 그런데 이때 부모로부터 어떠한 반영도 주어지지 않는다면 아이는 정체성 세우기를 포기하고 흐릿한 자기를 발달시키게 된다. 특히 부모에게 어떠한 관심이나 주목도 받지 못한 상처는 아이로 하여금 자기가 소중하고 중요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갖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성인이 되어서도 이들은 누군가에게 소중하고 특별한 사람이 되길 더없이 갈망하지만 그 느낌을 받기가 매우 어렵다. 이들의 관심은 흔히 상대방이 자기를 쳐다보는지, 자기 이야기를 집중해서 듣는지, 혹은 자신의 의견을 물어보는지 등 얼마나 상대방이 자기에게 관심을 보이는지에 집중되어 있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생각만큼 이루어지지 않을 때 크게 좌절하고 낙심한다.

이들은 대체로 타인에게 순종적이고 협력적이다. 왜냐하면 이들이 자라온 환경에서는 그렇게 할 때 조금이나마 상대가 자신을 소중하게 여겨줄 확률이 높았기 때문이다. 순응하고 협력하고 순종할 때 그나마 수용받는다고 느끼지만 안타깝게도 그에 대한 대가는 때론 자기의 많은 부분을 포기해야만 하는 값비싼 대가이다.


그렇다면 흐릿한 자기를 발달시킨 지영 씨의 어린 시절은 어떠했는지 살펴보자.



지영의 어린 시절,

지영의 가정에서 모든 관심과 주목의 대상은 그녀의 오빠였다. 그녀의 오빠는 어릴 적부터 음악적 재능이 뛰어나 남들에 비해 아주 이른 나이에 음악 공부를 시작했다. 그녀의 부모님은 오빠를 지원하느라 여념이 없었고 어린 지영은 항상 그들의 관심 밖이었다. 이 가정에서 그녀가 적응하는 방법은 그저 주어진 상황에 순응하고 따르는 것이었다. 

어릴 적 그녀는 혼자 노는 시간이 많았다. 그림을 그리며 시간을 보내곤 했는데, 부모님에게 그림을 보여주려고 해도 그들은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녀 또한 미술에 상당한 재능이 있었지만 그것을 알아준 건 가족이 아닌 그녀의 고등학교 선생님이었다. 어린 지영은 가족 안에서 늘 '보이지 않는 존재' 처럼 느껴졌다. 그녀에게는 가족과 같이 걸어간다는 느낌보다는 가족의 뒤를 따라간다는 느낌이 더 익숙했다.

처음 동민 씨를 만났을 때 지영 씨는 그가 참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모든 것을 갖춘 완벽한 사람이었고 늘 답을 알고 있었다. 그들의 데이트는 항상 동민 씨의 주도로 이루어졌는데, 지영 씨는 그게 오히려 좋았다. 사실 그녀에게는 누군가를 따라가는 것이 굉장히 익숙한 일이기도 했다.

처음 이 관계에서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한 건 결혼을 준비하면서부터였다. 동민 씨는 결혼에 있어서도 본인이 주도적으로 준비를 해 나갔는데, 지영 씨는 이때 다시 한번 자기가 '보이지 않는 존재'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결혼을 하고 동민 씨가 친구들과 술자리를 가지러 밖을 나갈 때도 그녀는 동민 씨에게 안중에도 없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것은 어린 시절 끊임없이 느꼈던 감정과 너무도 유사했다. 

그녀가 결혼 생활에서 바랐던 단 하나, 그것은 누군가에게 중요한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경직된 자기를 발달시킨 동민 씨와 흐릿한 자기를 발달시킨 지영 씨. 그들의 갈등은 사실 어린 시절 경험한 상처를 또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두 어른아이의 욕구가 충돌해 생기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보잘 것 없고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지 않기 위한 두 사람의 노력이다. 

이 둘에게 필요한 것은 동일하다. 바로 '나'라는 사람에 대한 존중이다. 내가 그토록 갈망하고 바라는 존중을 상대 또한 갈망하고 바란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서로를 대해 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