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착의 시기에 상처 받은 커플의 특징


이번 오리지널에서는 애착 시기에 상처와 결핍을 경험한 사람들이 성인이 되어 어떤 부부 갈등 패턴을 보이는지 살펴보았다. 

애착 시기의 상처를 가진 영대 씨와 준미 씨. 그들은 관계 속에서 서로 매달리고 회피하는 모습을 보인다. 안타깝게도 이런 부부 유형의 경우 한쪽이 매달리면 매달릴수록 다른 한쪽은 더 달아나고 만다. 반대로도 마찬가지이다. 한 사람이 회피하면 회피할수록 다른 한 사람은 더 매달리게 된다. 

즉, 이들은 안전한 애착을 그렇게 원하면서도 그것을 절대 이룰 수 없는 방식으로 관계를 맺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두 사람은 왜 관계 속에서 이런 모습을 보이게 된 걸까. 어린 시절 어떤 상처와 결핍이 있어 매달리고 회피하는 사람이 된 걸까. 지금부터 한번 알아보도록 하자. 


애착의 시기 

따뜻한 돌봄과 신뢰감이 필요한 때

대략 출생에서 생후 18개월 정도까지를 애착을 형성하는 시기로 본다. 엄마의 뱃속에서 세상 밖으로 나온 아기는 처음으로 분리라는 것을 경험한다. 그러나 아기는 여전히 주 양육자와 애착하고자 하는 충동을 가지며, 혼자서는 자신의 필요와 욕구를 채울 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생존을 위해서도 애착은 필수적이다. 

즉, 이 시기에 아기가 배워야 하는 발달적 과업은 적절하게 애착하는 능력이다. 엄마의 뱃속에 있을 때와는 달리 개별적인 나로 존재하면서도 주 양육자와 연결되어 있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주 양육자가 자신의 옆에 '있어 주는' 경험을 해야 한다. 아기는 주 양육자가 먹여주고 기저귀를 갈아주며 안아주고 달래줄 때 누군가 자기를 위해 충분한 시간을 들여 돌보고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세상에 대한 기본적인 안전감과 신뢰감, 사람들에게 애착하는 능력을 갖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적절한 돌봄이 모든 아기에게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부모들 또한 어린 시절의 상처가 있는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자녀를 낳아 대할 때도 자신이 지금껏 발달시켜 온 방어기제가 자동적으로 작동되기 때문이다. 


신뢰할 수 없는 양육은

매달리는 방어 기제를 형성한다 

아기가 신뢰할 수 있을 만큼 부모가 옆에 있어 주지 않을 때, 아기는 생존에 대한 위협과 버림받을 것에 대한 두려움을 느낀다. 한밤중 잠에서 깨어나 울기 시작할 때 혹은 배가 고파 울기 시작할 때 아기는 누군가 달려와 자신을 달래주고 젖을 주는 걸 필요로 한다. 그러나 아무리 울어도 달려와 주는 이가 없다면 아기는 자신의 필요가 채워지지 않을 수 있다는 불신과 부모가 언제든 자신을 떠날 수 있다는 불안을 갖게 된다. 이러한 불신과 불안을 갖게 된 아기는 부모가 옆에 있을 때 더 매달리고 더 보채는 방법을 선택한다. 그렇게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이때 아이는 울고 떼쓰고 소리지르면서 자신의 필요를 상대로부터 채움받고자 한다. 이렇게 강화된 적응행동은 성인이 되어서는 상대를 향한 비난이 될 수 있고 지나친 요구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매달리는 방어기제를 형성했던 준미씨의 어린 시절은 어떠했는지 살펴보자.


준미의 어린 시절,

준미 씨의 어린 시절은 따뜻한 돌봄과 신뢰와는 거리가 멀었다. 알코올 중독이었던 아버지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았고 그런 아버지와 사는 어머니는 우울증에 시달렸다. 준미 씨의 어머니는 따뜻한 사람이었지만 스스로 몸을 돌보기에도 여력이 없어 어린 준미 씨의 필요를 넉넉히 채워주지는 못했다. 준미 씨에게 부모님은 언제나 옆에 있어주는 대상은 아니었다. 그러나 준미 씨는 그런 부모님의 사랑과 인정을 늘 갈망했다.

부모님의 사랑과 인정을 받기 위해 준미 씨가 선택한 방법은 유능한 아이가 되는 것이었다. 아픈 어머니를 돌보고 언제 어떤 행동을 할지 모르는 아버지의 비위를 맞추고 동생들을 챙겼다. 술 문제로 아버지와 어머니가 싸우면 그 사이를 중재했고 아픈 어머니를 대신해 동생들의 학업과 진로도 그녀가 대신 지도했다. 그녀는 집에서 항상 무언가를 하고 있었고 가족 일에는 늘 개입이 되어 있었다. 그것이 그녀가 가족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는 방법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이것이 매달리는 방어기제인가 생각이 들 수도 있다. 다른 가족 구성원을 알뜰살뜰 챙기는 책임감 있는 장녀의 모습으로 비춰질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준미 씨 본인이 개입하지 말아야 할 영역까지도 침범하고 개입하고 있는 것일 수 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싸움은 두 분이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동생들의 학업과 진로도 어느 정도 도와줄 수는 있지만 그 선택과 실천은 동생들이 해야할 몫이다. 그러나 준미 씨는 항상 개입을 한다. 그리고 만약 그런 자신의 개입에 상대가 비협조적이거나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면 그때는 상대를 향한 비난으로 바뀌는 것이다.

영대 씨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준미 씨는 어린 시절 자신이 가족 안에서 한 것과 같이 영대 씨의 직장과 미래에 관해서도 동일하게 개입했다. 그리고 그것이 곧 둘이 이룰 가정을 위한 것이라 생각했다. 준미 씨의 제안에 영대 씨가 시큰둥하거나 아무 반응이 없을 때 그녀는 둘의 미래에 대해 아무 영향을 줄 수 없다는 무력감과 단절될 것 같은 두려움을 느꼈다.



차가운 양육은

회피하는 방어 기제를 형성한다

아기가 신뢰할 수 있을 만큼 부모가 옆에 있어 주지 않을 뿐더러 정서적 고통을 줄 때 아기는 아예 부모를 거부하고 만다. 부모가 주는 자극이 본인이 감당하기에 너무 위협적인 것이다. 이들도 처음에는 자신의 필요와 욕구를 울음을 통해 표현하고 부모에게 다가가기를 시도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 부모가 화를 내거나 차갑게 대한다면 아기는 자신이 무언가 필요하다는 욕구를 갖는 것과 그것을 표현하는 것이 잘못됐다는 결론을 내리며 부모는 자기를 위협하는 대상, 그렇기 때문에 피해야 하는 대상으로 인식해 버린다. 그 결과 스스로 요구하는 것에 대한 금지를 내리고 부모로부터 거절당했던 감정이나 필요, 욕구는 무의식 속에 억압해 두며 더 이상 부모에게 다가가지 않는다.

아동기의 아이들이 부모와 놀다 그 자리를 피해버리는 경우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아이가 그 자리를 피하는 경우를 보면 대부분 부모가 육체적으로 혹은 정서적으로 지나치게 아이를 자극하는 경우이거나 아이가 하고 싶은 놀이나 방법이 있음에도 그것을 함께하기보단 부모 자신이 원하는 놀이나 방법을 아이에게 요구하는 경우이다. 이럴 때 아이는 자신의 영역을 침범받는다 느끼며 그러한 부모의 자극을 위협적이라 받아들여 부모로부터 떨어지려는 행동을 보인다. 이것이 이들이 부모와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자신의 안전감을 유지하기 위한 일종의 생존 전략인 것이다.

그렇다면 회피하는 방어기제를 형성했던 영대 씨의 어린 시절은 어떠했는지 살펴보자.

 

영대의 어린 시절,

영대 씨는 매우 경직된 분위기의 집안에서 자랐다. 그의 아버지는 분노 조절이 안돼 화가 날 때면 폭언과 폭력을 일삼았는데 그 대상이 자신인 경우가 많았다. 영대 씨에게 아버지는 두려운 존재이자 위협적인 존재였다. 반면 그의 어머니는 그를 자신의 귀중품처럼 다루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의 필요를 잘 채워주는 것처럼 보였지만 피상적인 보살핌일 뿐 둘 사이에 어떠한 정서적 교류나 대화는 없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영대 씨는 울면 뚝 그쳐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듣고 자랐는데, 아버지가 계실 때면 혼이 나기도 했다. 화를 내는 것 또한 마찬가지였다. 영대 씨의 집에서는 아버지 외에 그 어느 누구도 화를 낼 수 없었다. 강한 감정은 표현하면 안 되는 것이 가족 내 규칙이었고 영대 씨는 점점 어떠한 요구도 표현도 하지 않는 아이가 되었다. 

어린 영대는 아버지와 함께하는 시간이 매우 고통스러웠다. 영업원인 아버지는 집에 안 계시거나 늦게 들어오시는 날이 많았는데, 아버지가 집에 들어오실 때면 영대 씨는 자기도 모르게 긴장이 되었다. 아버지께 인사를 하고 나면 바로 방에 들어가버리는 것이 일상이었다. 가족의 구성원으로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자신의 안전감을 유지하기 위해 영대 씨가 터득한 방법은 위협적인 존재인 아버지를 피하는 것이었다. 그에게 아버지의 분노는 지나친 자극이었고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위협적인 행동이었다.

준미 씨가 이것저것 질문을 할 때, 하나부터 열까지 다 개입하려고 할 때 영대 씨는 아버지로부터 느꼈던 위협을 동일하게 느꼈다. 자신의 영역이 침범당하는 느낌을 받았고 어린 시절 아버지를 피해 다녔듯이 준미 씨를 피해 다녔다. 그리고 준미 씨가 분노에 못 이겨 울기 시작하면 그것을 참기가 너무 어려웠다. 그에게 있어 강한 감정은 표현하면 안 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우는 준미 씨도, 그런 그녀에게 화를 내는 자신도 용납이 되지 않았으며 영대 씨에게 이 관계는 전혀 안전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준미 씨와 영대 씨 모두 어린 시절 경험한 상처와 결핍에 의해 서로 매달리고 회피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상대를 사랑하지 않거나 함께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다.  두 사람 모두 서로에게 연결되어 있고 싶어 하는 행동이다. 매달리고 회피하는 관계의 패턴을 깨고 서로가 그토록 원하는 안전한 애착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상대가 왜 이렇게 행동할 수 밖에 없는지 그 이면의 것을 이해하는 게 필요하다. 서로 어린 시절의 기억을 나누고 안아줄 때 관계 안에서 강력한 치유가 일어나기 시작한다는 것을 기억하길 바란다.